최근 유독 사극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후 10위권 안에 순위권을 꾸준히 지키고 있는 연모를 비롯해, 정조의 이야기를 다룬 "옷소매 붉은 끝동"도 10% 전후의 시청률을 보이며 꾸준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연모를 보고 있던터라 사실 옷소매 붉은 끝동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한 번 보고 나니 탄탄한 줄거리와 연기 그리고 화면까지 매력 있는 이야기.
정조의 이야기는 그전에도 "이산"이라는 드라마로 다뤄졌는데 이번 "옷 소매 붉은 끝동"은 강미강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 : 강미강 "옷소매 붉은 끝동"
방영: 2021.11.12~ (MBC)
출연 : 이준호, 이세영, 이덕화, 장희진 외
극본: 정해리
줄거리 :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
이준호는 2PM의 멤버로 그간의 연기력을 안정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세영은 아역 출신으로 연기 경력이 오래되었다.
연모와 마찬가지로 아역배우 출신의 여자 주인공과 현직 아이돌인 남자 주인공이라니. 연기도 잘하는데 노래도 잘해 춤도 잘 춰. 이런 사기캐가 왜 이리 많은 거야. 영조 역의 이덕화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쟁쟁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자체의 분위기가 탄탄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중전역의 장희진 배우의 연기도 좋다. 기생충의 엄마인 서상궁 역의 장혜지 배우도 그렇고.. 특별히 연기가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사람 없이 탄탄하다.
기본적인 내용이 정조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하는 의빈 성씨 성덕임과의 사랑 이야기인데 8화까지 진행된 현재 어릴 적부터 이어져오던 두 사람의 인연을 알게 되는 내용까지 전개되었다.
백일의 낭군님도 그렇고 연모도 그렇고 다들 어릴 적부터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는구나..
줄거리
1화: 어린 생각시 덕임은 제조상궁의 명으로 돌아가신 영빈 자가께 조문을 가게 된다. 한편, 세손 이산은 영조 몰래 영빈 자가의 처소로 향하는데
2화:덕임이 지키는 서고에 어느 날 나타난 이상한 남정네! 알고 보니 꽃미남 겸사서? 한편, 세손 저하께 올릴 반성문은 도저히 통과받을 기미가 안 보이는데
3화:궁궐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평화로웠던 궁녀 축제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덕임과 친구들은 궁녀들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을까? 한편, 산은 익위사 들을 이끌고 직접 호랑이 사냥에 나서는데
4화:겸사서 나으리가 사실은 세손 저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덕임! 계례식을 앞둔 덕임에게 세손 이산은 앞으로 눈에 띄지 말라며 엄포를 놓는데
5화:영조는 대리청정의 뜻을 내비치고, 산의 정적들은 이를 막고자 계략을 세운다. 한편 자신을 미행한 덕임에게 출궁의 명을 내리는 산. 덕임은 무사히 계례식을 치르고 동궁 나인이 될 수 있을까?
6화: 산을 구하고자 동덕 회에 가 밀명을 전하는 덕임! 덕임은 주상전하께 간언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산의 금족령을 풀 수 있을까
7화:내가 사모하는 사람은 세손 저하야! 덕임의 속마음을 알게 된 산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데... 한편 저잣거리에서 곤경에 처한 덕임 앞에 나타난 한 사내!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8화:마음이 복잡한 덕임에게 제조상궁은 산의 후궁이 되기를 또다시 권유한다. 한편 오랫동안 간직해 온 여범이 발각되어 끌려가는 덕임! 산과 덕임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9화:마침내 어릴 적 인연을 알게 된 산과 덕임, 한층 더 애틋해지는 두 사람. 한편 산은 영조를 대신해 행궁으로 능행을 떠나고, 제조상궁은 이를 기회 삼아 역모를 꾀한다! 산과 덕임은 시시각각 닥쳐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정조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 사도세자의 아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될 때까지는 왕가의 일반적인 코스를 밟으며 순탄한 생을 살았으나 1762년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죽게 되면서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던 1762년은 정조의 나이 11살이었다. 이후 세손이지만 세자의 지위를 가지고 생활하던 정조는 영조 말년 경인 1775년 국왕을 대신해 대리 청정하다가 다음 해 영조가 승하하면서 25세로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영조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아들이어 빠르게 세자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그에반해 정조는 꽤 오랜시간동안 세자로 있다가 수렴청정을 거쳐 왕이 되었다.
영조(정조의 할아버지)는 장헌세자(사도세자) 사후 정조를 앞서 요절한 맏아들 효장세자(후일의 진종)의 양아들이 되어 왕이 되었는데 장헌세자(사도세자)가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그의 아들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계통을 바꾼다고 해서 장헌세자와 정조의 부자 관계가 부정될 수는 없겠지만, 명분상으로는 죄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허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위 이후 정조는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이를 홍국영을 통해 추진하였다. (이는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도 나오는데 어린시절 홍덕로로 불린 홍국영을 영조가 정조 곁에 두면서 홍덕로는 정조곁에서 그가 왕위에 오를때까지 도움이 된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 인재 육성과 학문 정치 구현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4년 정도 경과한 시점까지 자신의 정적들의 제거에 일단락 성공한 정조는 이후 각종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 [正祖] - 조선 후기 개혁과 대통합을 실현한 군주 (인물 한국사, 이근호, 장선환)
의빈 성씨
어릴 때 궁중에 들어왔으며, 정조의 승은을 입고 상의(尙儀: 정 5품 벼슬의 내명부)의 직책을 얻었다. 정조의 후궁(後宮) 가운데 유일한 궁인(宮人) 출신이다.
정조의 첫사랑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후궁들 중 유일한 승은 후궁으로 정조를 15년이나 기다리게 했다. 의빈 성씨는 어릴 때 궁중에 들어왔고 혜경궁 홍 씨가 곁에 두고 길렀다. 정조가 직접 쓴 《어제의 빈 묘지명》에 따르면 재능·기술·예술까지 완전히 갖춘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내린 승은을 두 차례 거절하면서(처음에는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가 혼인후 아직 자녀를 낳지 않았다고 거절하였다.이후에도 한번더 거절한 것으로 나온다.) 하인이 벌을 받자 비로소 후궁이 되었다.
1782년(정조 6)에 아들을 출산하여 소용(昭容: 정 3품 벼슬의 내명부)으로 봉해졌으며 이듬해인 1783년 그의 아들이 세자(文孝世子)에 책봉되자 빈(嬪: 정 1품 벼슬의 내명부)으로 진봉 되어 ‘의빈(宜嬪)’이 되었다. 1784년(정조 8)에는 딸을 낳았지만 첫돌을 넘기기도 전에 사망하였고 뒤이어 문효세자도 1786년(정조 10) 5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였다. 의빈 성씨는 이때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자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태중에 아이 때문에 억지로 살고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효세자의 장례를 지낸지 약 2개월 후 출산을 앞두고 사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빈성씨 [宜嬪成氏] (두산백과)
정조는 드라마로 만들기에 드라마틱한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것부터 시작해서가 파란만장한데 그가 사랑한 여인에 대한 모습 또한 그렇다.
의빈 성씨는 혜경궁 처소의 궁녀로 늘 혜경궁 곁에 있을 수 있고 정조, 청연 공주, 청선 공주와 비슷한 나이대여서 혜경궁이 의빈을 자식처럼 기른 것으로 추측된다. 그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왔기에 그녀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알려져 있다. 후궁으로 삼기를 원했으나 중전인 효의왕후가 아이가 없어(효의왕후와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고 아려져 있다. ) 처음 후궁으로의 자리를 거절하고 이후에도 한 번 더 거절하였으나 정조가 하인에게 벌을 내리자 그제야 후궁이 되었다고 하는 게 그 과정이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정조 나이 29세 의빈 성씨 28세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시기를 생각해볼 때 늦은 나이에 첫 출산을 한 셈이다. 이후 자식을 품은 채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이라고하지만 너무 늦게 후궁이 되었기에 같이 한 시간이 짧고 자식을 먼저 보내고 난 이후 슬픔이 깊었다고 하며 세번째 자식을 뱃속에 품은 채로 세상을 떠난것을 볼때 안타까운 인생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의빈 성씨의 죽음
정조는 의빈 성씨 죽음 후에 20여 일이나 슬픔에 젖어 있었다고 하고 의빈 성씨가 죽자 손수 묘표와 묘지명의 문장을 지었다고 한다. 정조는 두 글에서 의빈 성씨의 생애를 돌아보며 추억한 뒤 세계(世系)를 밝혔다. 조선에서 배우자를 위해 비석의 문장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성을 위한 비문일 경우 어머니나 일족의 여성 어른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왕실에서도 역시 드문 일로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는 정조의 할머니인 영빈과의 사이에서 난 딸들을 무척이나 귀애했는데 그중 화순옹주를 위해 어필로 비석을 세웠다고한다. 그리고 정조가 의빈 성씨를 위해 묘표와 묘지명을 지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정조의 여인들 가운데 어제 비를 받은 것은 의빈 성씨가 유일하다.
특히 의빈 성씨의 묘표는 국왕이 글을 짓고 당대 명필로 이름 높던 이들이 글씨를 쓴 것으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경우라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 인해서 정조의 의빈 성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였다고 사람들이 추측하며 그 소재가 드라마화가 많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왕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고 또한 죽음 후에도 그 마음을 드러내어 표시한 것이 얼마나 애틋한 것인지 말이다.
역사는 그 자체가 스포라는 말처럼 이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배우들이 보여주는지에 따라서 드라마의 성패가 좌우될 거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요일은 다르지만 역시나 사극 로맨스물인 연모와도 그래서 비교되는 게 아닐까 싶고. 연모를 매우 좋아하며 보고 있는 나로선 연모가 조금 더 말랑하고 풋풋한 느낌이라면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진하고 깊은 느낌이랄까.. 결론은 둘 다 재미있다는 말!
연모가 끝난 후 무엇을 보나 했는데 당분간은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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